박춘재, 화성 연쇄살인 진범! 그는 왜 아내는 죽이지 않았을까?








 안녕하세요. 삽질하는 스토리 디거 SD입니다.

제가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위인전 속 성공 스토리와는 거리가 몹시 멉니다. 하지만 한 남자가 자신의 끔찍한 욕망을 30년 넘게 감추고, 전국의 경찰을 따돌리며 완전 범죄를 꿈꿨다는 점에서, 이건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뒤틀린 성공의 기록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파헤칠 인물, 바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 이춘재입니다.

대체 그는 누구였길래,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끔찍한 미제 사건의 범인으로 30년 동안이나 숨어 지낼 수 있었을까요. 그의 삶을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이춘재는 1963년,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바로 그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진 바로 그 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10대 시절을 보낸 동네에서 자신의 첫 번째 범죄를 시작했죠. 그의 아버지는 매우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춘재는 이런 아버지 밑에서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로 자라났습니다. 동네 사람들 그 누구도 이춘재가 훗날 그런 괴물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존재감 없는 아이. 그게 전부였죠.

학창 시절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특출나게 잘하지도, 그렇다고 심각한 문제아도 아니었죠. 그저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이미 무언가 뒤틀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하면서 첫 번째 균열이 감지됩니다.

이춘재는 군 복무 중 불명예 제대를 합니다. 당시 그의 죄목은 절도 및 근무지 이탈 시도였습니다. 지금 보면 이것은 명백한 위험 신호였지만, 당시에는 그저 철없는 젊은이의 일탈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사회로 돌아온 그는 전기 부품 공장에 취직하고, 1986년 결혼까지 합니다. 아들까지 낳았죠. 겉보기에는 완벽하게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해, 1986년. 그의 결혼 생활이 시작됨과 동시에 화성에서의 첫 번째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의 끔찍한 성공 계기, 혹은 범죄의 시작점은 바로 이 이중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아내와 아이를 돌보는 평범한 가장. 밤에는 억누를 수 없는 살인 충동에 사로잡힌 괴물. 이 두 얼굴을 완벽하게 연기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춘재의 범행은 대담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 자신이 잘 아는 지형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수사망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춘재는 수사 과정에서 용의 선상에 올라 경찰 조사를 무려 세 번이나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번번이 풀려났죠. 심지어 그의 혈액형은 B형이었지만, 당시 경찰은 범인의 혈액형을 O형으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유히 수사망을 빠져나갔습니다.

화성에서 9건의 살인을 저지르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꼬리를 잡히지 않았습니다. 1991년 마지막 사건 이후, 그는 돌연 화성을 떠납니다. 마치 연기처럼 사라졌죠. 그리고 사람들은 그가 어딘가에서 죽었거나, 혹은 다른 지역으로 떠났을 거라 추측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그리고 왜 갑자기 멈춘 걸까요.

그는 멈춘 것이 아니었습니다. 1993년, 그의 아내가 가출을 하자 그는 처제를 찾아가 또다시 끔찍한 범죄를 저지릅니다. 이번에는 충북 청주에서였죠. 하지만 화성에서와 달리, 이번 범행은 허술했습니다. 그는 결국 경찰에 붙잡혔고, 이 청주 처제 살인 사건으로 무기 징역을 선고받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그저 한 건의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화성의 악마와 동일 인물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죠.

여기서 더 소름 끼치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나옵니다. 이춘재는 교도소에서 무려 20년 넘게 1급 모범수로 생활했습니다. 교도소 내에서 도자기 공예 기술을 배우며 조용히 수감 생활을 이어갔죠. 그는 완벽하게 자신을 숨겼습니다. 만약 과학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그는 영원히 청주 처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만 남았을 겁니다.

하지만 2019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소식이 전해집니다.

경찰이 DNA 기술의 발달로 화성 사건 현장의 증거물을 다시 감정했고, 그 DNA가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겁니다. 30년 만에 괴물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경찰이 그를 추궁하자, 이춘재는 처음에는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거듭되는 DNA 증거 앞에, 그는 결국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고백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는 화성 9건을 포함해 총 14건의 살인과 30여 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습니다.

그의 자백 과정에서 나온 말은 우리를 더욱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당시 화성 사건 중 8차 사건은 모방 범죄로 결론 나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경찰이 이 8차 사건에 대해 묻자, 이춘재는 태연하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 그건 내가 안 했어요. 그 사람 잡혔잖아요.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 그리고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까지. 교도소 안에서 모든 뉴스를 지켜보며, 마치 왕이 된 것처럼 자신의 범죄 기록을 즐기고 있었던 겁니다.

그가 자백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공소시효가 모두 끝나 자신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저 자신의 완벽했던 범죄를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는 수사관에게 당시 상황을 그림까지 그려가며 상세히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에게 성장에 도움을 준 사람이나 책은 없었습니다. 그가 읽은 것은 오직 자신의 욕망뿐이었죠. 결국 30년 만에 드러난 괴물의 민낯은, 너무나 평범해서 더 소름 끼치는 우리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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